배도희 · 프롤로그 1
진행자의 체면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하지 못하는 이유

동네 북카페 '페이지'는 배도희가 가장 아끼는 도피처였다. 적당히 낮은 조명과 코를 간지럽히는 종이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점이 완벽했다.
오늘도 도희는 구석진 소파에 앉아 빳빳한 신간 한 권을 무릎에 올린 채 여유로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평화가 깨진 건 서점 주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을 때였다. 그녀는 도희의 손을 거의 붙잡다시피 하며 애원했다.
"도희 씨, 정말 죄송해요! 오늘 북토크 사회를 맡기로 한 선생님이 갑자기 사고가 나서 못 오신다는데, 당장 5분 뒤에 시작해야 하거든요. 도희 씨 책 좋아하시고 말씀도 잘하시니까 제발... 잠깐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도희의 시선이 무릎 위의 책으로 향했다. 제목은 '구조적 서사의 해체'.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한 채 겉표지의 질감만 감상하던 중이었다. 거절해야 했다. 아직 읽지도 않았다고, 이런 건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카페 안에는 예닐곱 명의 참석자가 기대에 찬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못 한다고 손사래를 치면? '책 좋아하는 세련된 단골'이라는 이미지는커녕, 위기 상황에서 뒷걸음질 치는 무능한 이웃으로 남을 터였다.
도희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미소를 지었다.
"아, 많이 당황하셨겠네요. 알겠어요. 제가 잠시 자리를 메워보죠."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다. 도희는 카페 앞쪽 작은 의자에 앉았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마이크보다 더 묵직하게 꽂혔다. 그녀는 방금 훑어본 목차의 단어들을 조합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사실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죠. 작가가 숨겨둔 메타포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달까요?"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추상적인 단어 몇 개를 섞어 던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각자의 지성으로 해석해 받아들였다. 도희는 안도하며 시선을 돌리다, 맨 앞줄에 앉아 유독 조용히 자신을 관찰하던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차분한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여자, 민서였다.
"저,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민서가 손을 들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질문은 날카로웠다.
"방금 메타포를 말씀하셨는데, 3장에 나오는 '푸른 열쇠'가 주인공의 억압된 자아를 상징한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오히려 타인과의 단절을 뜻하는 것 같아서요."
푸른 열쇠? 3장? 도희의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그녀가 읽은 것이라곤 책 뒷면의 추천사뿐이었다. 하지만 도희는 당황을 감추며 여유롭게 턱을 괴었다.
"아, 그 부분 말이죠. 민서 님 말씀처럼 단절로 읽힐 여지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작가의 특징이 그런 거잖아요? 중의성. 억압된 자아와 단절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 같은 거죠.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주 넓은 스펙트럼을 열어둔 셈이니까요."
말을 내뱉으면서도 도희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이지 아무 내용도 없는 완벽한 답변이었다. 민서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도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동의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더는 캐묻지도 않았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서점 주인은 연신 고맙다며 도희에게 따뜻한 라테 한 잔을 건넸다. 도희는 다리가 풀리는 것을 참으며 짐을 챙겼다. 이제 이 문만 나가면 오늘의 아슬아슬한 연극도 끝이었다.
"사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도희의 어깨가 움찔했다. 돌아보니 민서였다. 그녀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도희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민서의 눈은 여전히 고요했고, 입가에는 아주 미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 아까 질문해 주신 분이네요. 도움이 되셨나 모르겠어요."
도희가 다시금 '완벽한 단골'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민서는 인사를 건네는 대신 도희의 곁으로 바짝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오직 두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의 크기였다.
"그런데 사회자님,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어서요. 혹시 그 책... 정말 읽으신 건가요?"
대화
배도희과 방금 읽은 장면의 여운을 이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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